이번엔 무슨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목적없이 키보드 앞에 앉았다. 과거 컴퓨터란 기계를 상상할 수 없었을 때 자신의 존재가치를 펜이라는 매체를 통해 종이에 옮기듯이. 지금은 손가락을 통한 압력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면 그저 감정없는 모니터가 글자를 뿜어낼 뿐이다. 호주에서 한국에 온 지 어느덧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라던가. 치열했던 삶의 열기 속에서 벗어나니 그 3개월이란 시간은 또다시 겉으로 보이기엔 일상의 평온의 연속일 뿐이었다. 길면 길었던 그 시간. 대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해외로 나가고, 스펙을 쌓고, 봉사활동을 하고, 부족한 토익점수를 올리며 치열하게 살고있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 마냥, 부모님의 평온함에 힘입어 그 치열함 속에서 벗어나 있다. 그렇다고 내가 3개월을 무의미하게 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 있어 이렇게 가치있는 시간을 보냈나 싶기도 하고,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힘을 다해 책을 읽어왔다. 처음엔 베스트셀러들을 읽었고 그러다 보니 관심이 여러분야로 문어발처럼 확장되어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지금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읽고 지난번에 읽다가 중단한 플라톤의 국가를 다시 꺼내들었다. 언제까지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책은 지은이의 혼이 닮겨있다고 생각한다. '혼'이외에 개성,이념,생각등 이 모든것들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그 혼이 담긴 책들을 읽으며 독자인 나는 내 혼과 받아들인 혼을 한데 모아 춤을추게 한다. 책을 읽기전 멈춰있던 혼들이 사념의 공간 속에서 제 집을 만난 마냥 신나게 뛰어다닌다. 그 덕분에 나는 가지고 있던 평온을 잃고 정신적 혼돈 속에 빠진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혼돈이라고 표현해야할 듯한, 마치 새로움이 생기기 전 나타나는 빅뱅과 같은 혼돈이라 그런지 나쁘지만은 않다.
키보드가 펜보다 위력적이기도 때론 약한점이기도 한 것은 머리 속의 생각들을 지체없이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펜을 쥐고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니까. 하지만 그만큼 쓸데없어 보이기도 하다. 지금 쓴 이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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