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6일 수요일

학습의 노동화

초등학생이 고교 수학… '학습노동'에 지쳐 문제아 되기도

영어 사교육 시작 연령도 점점 낮아져 현재 3.7세
더 못 따라가면 자포자기 우등생 망치는 경우 많아
 
 
누가 한말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은 일찍 죽는 것이고, 그보다 더 큰축복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댓글을 보면 다들 삶이 불행하다고만 이야기 한다. 언론에서 뿜어내는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삶에 행복이 없다. 적어도 호주에서는 이런 느낌 안받았는데, 한국에 오고 몇달동안 느끼는 감정은 한국은 현대화의 전형적인 모습-불행한 삶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것이 삶의 축복이 아닌 삶의 저주가 되어버린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남들은 말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수 없다고. 먹고 살기 힘들다고.
나는 묻고 싶다. 그렇게까지 돈 많이 벌면서 살면 사람답게 사는 것이냐고. 무엇이 사람다운 것이냐고. 하루에 빵 한조각을 먹으며 가난하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러고 싶다. 행복이 비교로부터 나온다는 현대인의 사고 때문에 그들은 마치 가난이 불행의 척도인줄 알고 있다. 배부른 돼지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왜 배부른 연예인들은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가. 그것이 사람다운 것이라면 왜 남들의 시선을 받고 즐기는 그들은 죽는가. 행복하지 않아 죽음을 찾는 것이라면 죽음이 행복의 극이기 때문인가.
현대화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현대화를 버리는게 낫다.

어른들은 반성해야 한다. 무엇이 진정 이 사회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게 다 너희의 미래를 위해서야.'라고말하는 부모들은 그 '미래'가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돈'많은 미래인가.'행복'한 미래인가.

자본주의의 이러한 모습때문에 마르크스는 그러한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추구 했을지도 모른다. 공산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 '자유'가 없다고 외치지만, 과연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자유'는 있는가?
'자유로운 상상이 제한된' 수학의 정석을 푸는 초등학생은 영재이며, '상상의 날개를 펼친'1+1=2가 왜 공리인지 고민하는 학생은 둔재인 사회가 진정한 '자유'로운 사회인가?

학습노동이라니. 그냥 한국사회 자체가 코메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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