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오랜 관계의 의미

오래 관계를 맺는 것이 왜 중요할까?
1. 욕구(목표) 측면 : 사람들은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관계적, 과업적, 정서적 등 많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욕구를 추구하려 한다. 그래야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 ‘너만 있으면 돼라는 사고를 가지고 사람을 사귀면 문제가 발생한다. 갈등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상대는 나의 모든 욕구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인데, 불가능하다. 이는 소위 말하는 집착이다. 그래서 많은 관계가 요구된다. 얕은 수준의 관계는 나름대로 문제없이 쉽게 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오랜 관계, 깊은 관계에서만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로맨스를 꿈꾸는 것도 이러한 오랜 관계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 깊은 관계에서 충족시켜야 할 이러한 욕구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 욕구를 충족한다는 것은 늘 나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새로움, 세상에 대한 새로움 등을 찾아 나간다는 뜻이다. 이는 얕은 수준의 관계에서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오직 오랜 관계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래서 결혼하고 40~50년을 배우자와 같이 살면서 이런 오랜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10년 동안 10명의 사람을 1년씩 만난다고 해서 10년 동안 1명의 사람과의 관계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만나는 사람을 자주 바꾸는 사람은 낮은 수준의 관계밖에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스스로 나의 삶의 깊이를 낮추는 것이다. 따라서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2. 유형
대인관계에도 룰이 있다.
A. 권위주의적 관계 지향 : 한국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선후배 관계. 부모 자녀 관계. 오늘날에는 권위주의라는 말이 너무 부정적으로 쓰이는데, 원래 조선시대 때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사실 권위주의라는 것은 그 사람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하고 역할, 도리가 같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권위라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 따른 역할에 충실함으로서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역할의 충실은 없어지고 지위만 남아서 관계를 규정하려니까 부정적으로 많이 인식된다.
권위주의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이 관계에 대해 책임을 많이 진다. 또한 우리나라 같은 경우 특히 권위주의 속 부하는 윗사람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룰을 보면 실질적으로 권위주의가 작용하는 것은 나쁜 것만이 아니다. 하지만 이 룰이 왜곡하여 책임은 지지 않고 권위만 악용한다면 문제가 된다.
B. 공동체적 관계 지향 : 분리된 개념이 아닌 너와 나는 하나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관계 유형이고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하나라는 개념이 강했다. 조상들이 살아온 여러 가지 상황을 봐도 구분 짓기 보다는 하나인 것을 많이 추구했다. 유교, 불교에서도 구분 안 짓는 것을 추구했다. 이처럼 이념적인 부분, 실제 생활 모두에서 우리는 늘 하나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계는 부모자녀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가족이 대표적이다. 가족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 단위이고 가족 안에 있으면 구분되지 않고 하나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성인이 돼서도 하나가 되는 대인관계를 추구한다.
  이러한 공동체적 관계에서는 떨어진 개인들 간의 관계를 지배하는 규범이 작동하질 않고 새로운 규범이 생긴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규범이 그것이다. 이것을 간주관성이라 부른다. 이러다보니 공동체 지향의 사람(한국사람)들은 언제나 서로를 연결시켜서 묶으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언제나 하나로 묶으려다보니 사람들은 끊임없이 관계의 친밀도를 높이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서로에 대해 공유하는 속도가 비슷해야 하는데 이 속도가 어긋나면 상대방은 상당히 부담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나는 상대와 친하다고 생각해서 장난도 치고, 막 대하기도 하지만 상대는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사회의 대인관계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 이 부분인데, 물론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대한 욕구도 있지만 개인적 측면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도 있다. 지만 한국사회는 너무 공동체적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니 상호작용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이는 또한 개인적 측면의 보장욕구(자율성, 유능감, 자신이 주체가 되려는 욕구 등)를 무시하는 경향을 만들기도 한다.
한편 서구에서는 부모자녀 관계는 다 독립적 존재의 집합이다. 그러다보니 서구는 동양의 이러한 공동체적 가족관계를 미성숙한 것으로 생각한다.(‘미성숙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와 분리를 못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
오늘날에는 공동체적 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 이동하는 추세인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화적 변동이 큰 요인이다.
C. 대등한 관계 지향 : 독립성 인정, 대등한 관계
D. 거래적 관계 지향 : 경제적 관념이 강함.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 힘듦. 서구에서는 이러한 거래적 측면이 팽배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인정받기 대단히 어렵다. 거래적 관계는 장기적으로 보면 관계형성에 도움이 안 된다. 대인관계를 잘 하려면 결국 자기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놓아야 하는데(사랑고백처럼 전부를 걸어야 하는데) 관계를 계산하다보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전부를 걸면 손해 일텐데..등의 생각)많은걸 걸 수 없고, 결국 깊은 관계를 얻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단기적인 것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1년 뒤에 10만원을 받기보다 당장 만원을 받는 것을 선호 한다.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약 관계를 계산한다면 결국 앞에 놓인 것만을 보게 되고, 당장은 얻을 수 없지만 장기적인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지 못한다.
 
외로워지는 것. 고독의 문제
외로운 것이 왜 문제일까?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이 왜 중요할까?
고독하다고해서 단기적으로 일을 못하진 않는다. 대인관계는 살아가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물론 일도 에너지의 원천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 관계에 대한 에너지의 원천과 일에 대한 에너지의 원천.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관계적 에너지 원천이 더 본질적이다. 따라서 사람이 외로우면 일을 못한다. 인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따돌림 당하는 학생은 공부에도 집중할 수 없다.
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연결 되려는 욕구가 있다. 이러한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을 개방하면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폐쇄적으로 바뀌게 된다. 연결하고 싶어 개방해 놓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상처받고 포기하게 된다. 사람은 본래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이는 유기체의 특성이다. 따라서 상처받고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은 활동을 하지 않고 방어적인 사람이 된다. 방어적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왜곡시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관계를 잘할 수 있는 자질을 개발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대인관계에 대한 높은 수준의 자질을 요구한다. 한국은 정서적으로 발달하고 대인관계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매우 발달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관계에 대한 미묘한 룰(눈치보기 등)이 매우 발달해 있다. 이런 것들을 잘 알아야 대인관계를 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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